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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학 피라미드에 관한 신비주의는 19세기에 피라미드학이라는 의사 과학에서 생겨났다. 스코틀랜드의 왕립 천문학자 찰스 피아치 스미스는 1870년대를 보내며 대피라미드가 천문 계산기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피라미드의 모든 면과 각도를 측정했다. 스미스는 자신의 모든 측정 결과를 정리하여 1.00106영국 인치에 해당하는 기준 길이인 신성인치라는 것을 자체적으로 창안해 냈고, 그것을 기준으로 대피라미드의 둘레가 정확하게 36,524.2신성인치, 즉 1년 태양일수의 100배라는 것을 입증해냈다. 또한 그는 25신성인치를 신성큐빗으로 정의했는데, 구조체의 모든 측면의 길이를 25라는 값으로 나누면 365.242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883년에 이집트학자 윌리엄 플린더스 페트리 경은 스미스의 대피라미드 측정값..
로마노프가의 몰락 니콜라스와 알렉산드라 로마노프 부부는 스스로 몰락을 자초했다. 둘중 누구도 전혀 명석하지 않은데다 무능력한 통치도 재앙적 수준이었지만, 그 사태는 바르비투르, 아편, 코카인 중독, 미신신봉으로 더 악화되었다. 그러다 그들은 결국 사악한 라스푸틴의 손아귀 안으로 떨어진다. 많은 이들이 라스푸틴을 러시아 황실에 위함한 영향을 준 요승으로 바라본다. 니콜라스 2세가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 군대를 지휘하면서 러시아 장군들에게 명령이 잘 위임되지 않자, 독일군들은 환호했다. 니콜라스 2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황후 알렉산드라는 나라를 망가뜨린다. 민중들이 기아로 폭동을 이으키자 그녀는 코사크 기병대 여단을 풀었다. 이로 인해 그 녀에 대한 민중의 감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급기야 코사크 부대가 거꾸로 폭동을 일..
라스푸틴의 실체 1869년에 시베리아에서 그리고리 예프모비치 노비크로 태어난 라스푸틴은 십대 시절 반사회적인 행동과 사소한 범죄에 많이 연루되었던 문제아였다. 1887년에 프라스코비아 두브로비나와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둔다. 1897년에 말 절도죄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는데, 그의 버려진 아내는 마지막까지 그리고리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들 자녀 중 마리아 , 디미트리, 바바라, 셋만이 생존하여 성년이 되었다. 그리고리가 길거리의 생활을 하다가 깨달은 것은, 소요하는 신비주의자 행세를 하면 이득거리가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라스푸틴이라는 별명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 라스푸틴은 탕아라는 뜻인데, 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자신의 교리 밑으로 쉽게 초심자들을 끌어모았다. 19..
클레오 파트라의 자녀들 클레오파트라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버지인 것으로 추정되는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장자는 카이사리온이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아버지임을 항상 부인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사망하고 11일후,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시리온이 카이사르의 아들이기 때문에 로마 왕좌를 두고 자신과 경쟁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를 죽였다. 클레오파트라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사이에도 알렉산더와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데푸스라는 두 아들과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라는 딸을 두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이후, 이 자녀들은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로마로 보내져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버려진 아내였던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 옥타비아와 함께 살았다. 그 후 두 아들은 역사적 기록에서 사라졌는데, 강력한 주장에 따르면 셀레네가 가문의 오랜 전통에 따라 형제들..
바운티호 반란과 블라이의 실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실성한 사디스트로 묘사되고 있는 전함 HMS 바운티호의 선장 윌리엄 브라이는 사실 장년의 대위가 아닌 34살의 중위였고, 개조된 상선인 HMAV 바운티호를 이끌었다. 1787년에 타이티섬으로 파견된 바운티호의 파견 목적은 빵나무가 서인도 제도 노예를 위한 값싸고 지속 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블라이는 배 위에서 독단적이고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으며, 배를 개인적이고 가학적인 영지 정도로 취급했다. 점잖은 일등 항해사 플레처 크리스천이 어느 정도 막아주기는 했지만, 점점 미쳐 날뛰는 블라이의 행동을 저지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선원들은 어쩔 수 없이 영국 해군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고 묘사된다. 사실..
호주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일까? 탐험가가 어떤 광활한 땅덩이에 최초로 발을 들여 놓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특히 영국의 역사책들이 정말로 의미하는 것은 , 그곳에 도착한 최초의 백인이다. 아무나 붙잡고서 호주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거의 '제임스 쿡 선장'이라고 자신 있게 답할 것이다. 하지만 호주 대륙을 진짜 최초로 발견한 이들은 최소 4만 년 정도 앞서는 아프리카 여행자들이었다. 말하자면, 호주 토착민들은 고향을 떠나온 아프리카인들의 자손들이다. 그들의 DNA 안에는 원시적인 뗏목에 올라 인도, 말레이시아, 보르네오를 거쳐 호주의 북동부에 도착한 뒤 1,000킬로 그램에 달하는 마지막 장정으로 티모르섬까지 올라갔던 조상들의 흔적들이 뒤섞여 있다. 기원전 338년의 기록에 보면, 베이징의 황제 동물원에서 캥거루를 ..
아메리카 대륙에는 누가 처음 갔을까요? 학교에서는 특히 미국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제노바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위임을 받아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대륙의 이름은 그의 동시대인인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기려 붙여졌다고 가르친다. 미국인들은 아직도 도시이름에서 우주 비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콜럼버스라는 이름을 사용할 만큼 이 인물을 매우 중요시 한다. 하지만 그는 아메리카 땅을 밟아 본 적도 없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의아하기만 하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한' 이들은 사실 러시아인들이었다. 2000여년 전만 해도 러시아와 알래스카가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시베리아 부족들이 아메리카 땅을 쉽게 거닐었다. 다음으로 콜롬버스를 앞선 후보는 아마 훗카이도의 토착 일본인 아이누족일 것이다. 그 ..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여성 , 도쿄 로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도쿄 로즈라는 유령은 여전히 대중문화에서 회자되며 달콤한 목소리를 내는 일본 요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쿄 로즈는 2차 세계대전동안 태평양에서 일본 육해군과 교전하던 미군을 조롱하기 위해 매일 라디오 방송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미군들은 사랑하는 아내가 집에 정부를 들여 배신하는 사이 자신들은 절박한 패배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도쿄 로즈의 조롱까지 견뎌야 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미스터리한 여성이 실은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많은 이에게 충격일 것이다. 말하자면, 미 행정부는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자신들의 영웅을 망상에 빠진 히스테리 환자들로 낙인찍게 되는 정치적 자살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도쿄 로즈로 만들어 잡아넣어야 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누명을 뒤집어쓸 희..
나이팅게일 똥 마사지 전통적으로 게이샤의 하얀 분칠은 납 성분의 화장품으로 연출되곤 했지만, 이런 화장품이 피부에 매우 유해했기 때문에 쌀가루를 이용한 재료로 대체되었다. 두 가지 화장법 모두 치아가 하얀 얼굴에 비해 비위생적으로 누렇게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게이샤들은 치아를 까맣게 칠하곤 했다. 하얀 분칠을 지울 때는 나이팅게일의 똥을 이용했다. 2005년에 스트븐 스필버그는 아서 골든의 1997년작 소설 게이샤의 추억을 영화화했는데, 여기에서는 나이팅게일 똥의 깨끗함과 그 이용법을 이야기 흐름상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서, 새똥이 고대 미인들의 화장법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일부 관객에게 심어주었다. 그때부터 부유한 유명인들은 나이팅게일 '똥' 마사지가 포함된 '게이샤 화장법'의 1회 이용에 250달러를 기꺼이 지불해왔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