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티호 반란과 블라이의 실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실성한 사디스트로 묘사되고 있는 전함 HMS 바운티호의 선장 윌리엄 브라이는 사실 장년의 대위가 아닌 34살의 중위였고, 개조된 상선인 HMAV 바운티호를 이끌었다. 1787년에 타이티섬으로 파견된 바운티호의 파견 목적은 빵나무가 서인도 제도 노예를 위한 값싸고 지속 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블라이는 배 위에서 독단적이고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으며, 배를 개인적이고 가학적인 영지 정도로 취급했다. 점잖은 일등 항해사 플레처 크리스천이 어느 정도 막아주기는 했지만, 점점 미쳐 날뛰는 블라이의 행동을 저지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선원들은 어쩔 수 없이 영국 해군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고 묘사된다.
사실 플레처 크리스천은 주제 넘는 성격의 까탈스러운 허세꾼이었다. 그는 그전에도 블라이 밑에서 항해한 적이 있었기에, 타이티행 원정도 같이 가고 싶어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함께 가고 싶었던 블라이 해군 위원회에 그를 항해사로 임명해 달라는 서한을 제출했지만 , 위원회는 크리스천의 복무 기간이 짧아 서열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존 프라이어를 그 대신 임명했다. 그러나 운항 중간에 블라이는 프라이어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등 항해사 자리를 크리스천으로 교체하고, 그를 중위 대행으로까지 승진시켰다. 따라서 그때까지만 해도 이 둘 사이에는 갈등이 업었던 것으로 보인다.
블라이에게 가학적인 성향이 있어서 사람들이 거의 죽을 지경까지 매질 당하는 모습을 보면 동성애적인 희열을 느겼다고 하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그가 부하들을 밧줄에 묶어 배 밑으로 끌고 가는 장면을 통해 인물을 훼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관행은 크리스천이나 블라이가 태어나기 몇십 년 전인 1720년 경에 이미 영국 해군들에 의해 폐기 되었다.